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 호국군 (문단 편집) == 운영 == [[1948년]] [[조선경비대]]를 [[대한민국 육군]]으로 정규군 창설한 뒤에도 한국군은 지원병제를 유지했다. 인원 제한이나 장비 부족 등이 이유였다. 그 때문에 현역 대신 예비역 부대를 창설했다. 호국군은 [[대한민국 육군본부]]가 생기기 전에 최상급 기관이었던 육군총사령부 예하의 호국군무실(護國軍務室)에서 담당했다. 형태는 [[주방위군]]이나 [[일본]]의 즉응예비자위관에 가까웠다. 1949년 3월에는 육군총사령관을 지낸 [[송호성(군인)|송호성]][* [[한국광복군]]에서 [[지대장]]을 지낸 인물로 당시 [[참모장]]인 [[이범석]]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이범석이 초대 [[국방장관]]이 되자 육사 훈화 연설 등에서 [[http://parizal.egloos.com/3490998|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김구]]의 측근이었는데 김구가 암살당하자 급격히 몰락했고 전쟁 중에 [[납북]]되었다.]이 호국군사령관이 되었다. 1949년 8월 31일에 해체되어 정규군과 통합되었다. 대신 [[민병대]]인 [[청년방위대]]가 일종의 예비군 역할을 했다.[* 예비군이 부활한 것은 [[1968년]]의 일이다.] 호국군은 시,군,면단위로 중대, 대대를 편성하고 그 조직을 현역에 준하는 편제 즉 3,4,4,4편제(연대 예하 3개 대대, 대대 예하 4개 중대, 중대 예하 4개 소대, 소대 예하 4개 분대)로 편성되었다. 사병들은 [병역임시조치령]에 따라 본인의 지원에 의해서 신검을 받은 후 합격자 중에서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현역으로 갈 것이냐 호국군로 갈 것이냐를 결정 했다. 하지만 예비군이라고 하더라도 연대와 대대 내에 인사 정보 작전 의무 수송 군수 심지어는 특별 참모까지 있을 정도로 사실상 현역에 준하는 편제였고 연대장과 대대장은 주로 군사 경력자들로 임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